가족유럽여행 8일차 | 세낭크 수도원과 니스의 마지막 밤

2025. 6. 20. 19:00·Challenge/Daily

세낭크 수도원, 라벤더와 침묵의 공간

아침 일찍 우리는 고르드(Gordes) 지역의 유명한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nanque)에 들렀다. 차 없이는 접근하기 힘든 조용한 산자락에 자리한 수도원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듯 고요했다.

남프랑스가 라벤더로 유명하듯이, 이 산골짜기 수도원 마당 역시 라벤더 밭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 라벤더가 만개하지 않아 사진 속 장관을 보지 못했지만, 수련하기 좋은 폐쇄적이면서도 쾌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름답지만 폐쇄적인 만큼, 나는 그저 관광객으로써 겉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수도원도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왔던 수도원처럼 비극적인 일들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불경한 상상을 한다.

동시에 유럽의 종교 건축물들은 왜 대부분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때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지어진 공간들이 이제는 희소성으로 인해 상업화된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의 절이나 교회처럼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공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록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진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본 수도원의 풍경은 마음까지 평화롭게 해주었다.

 

산으로 둘러쌓여있던 세낭크 수도원
가까이서 보는 세낭크 수도원

 


부자 마을, 보류쉬르메르의 점심 식사

우리 가족에게 이번 여행 좋은 소식도 있었다. 누나가 집을 사고 차를 샀다는 것. 젊은 나이에 ‘서울에 내 집 마련’을 이룬 누나는 이제 교수라는 커리어까지 갖게 되었다. 우리는 그 기쁜 소식을 안고 남프랑스의 보류쉬르메르(Beaulieu-sur-Mer)라는 마을로 향했다.

모나코와 가까운 이 도시는 럭셔리한 분위기로 가득했고, 우리는 Ambrosia라는 이름의 야외 테이블 식당에 들렀다. 거리에는 금붙이를 걸친 노부부들이 활보했고, 스포츠카와 요트를 타고 다니는 노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은 만석.

우리는 발렛파킹 후 식당에 앉아 해물밥, 샴페인,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럭셔리한 분위기에 비해 음식은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해물밥만큼은 크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그 공간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누나는 기쁜 마음으로 시원한 샴페인 터트리듯 한턱 쐈다.

 

엄청난 양의 해물밥
분명 스테이크를 시킨건 맞지만 진짜 스테이크만 나오는건 색다르다
우리가 앉았던 야외 테이블
가게앞 출항을 기다리는 요트들


조약돌 해변에서의 수영과 자유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는 식당 앞에 있던 플라주 프티 아프리크(Plage Petite Afrique) 해변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에서 배영을 하며 누워 있자, 조약돌이 구르는 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왔다.

바다에 배영 자세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그 자유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늘 아래에서 잠이 들고, 우리는 사진도 찍고 수영도 했다. 나는 금세 추워져서 나왔지만, 이 순간을 충분히 즐겼다.

유럽 사람들은 정말 강철 인간 같다.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도 그늘을 찾지 않고 태닝을 즐기며 책을 읽고, 차가운 물에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익어가는 그들의 피부는 마치 햇살을 즐기는 방식처럼 보였다.
별나기도 하고 멋있기도한 강철 유럽인간들.

이렇기보여도 사람이 정말 가득하고 물은 차디찼다
태닝을 하고 물놀이를 즐기는 강철인간


니스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사색

우리는 니스로 돌아가기 전 다른 해변을 둘러보고, 숙소에서 낮잠을 잤다. 저녁 즈음, 맑은 니스 거리를 걷기 전 나는 혼자 해변에 앉아 여자친구에게 블로그를 본다.

여자친구도 블로그를 쓰고 있었고, 나는 글에 댓글을 달며 혼자 웃고 있었다. 그때 젊은 친구들이 다가와 여행 왔냐고 물어보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봤다.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고 가족과 여행 중이라 말하자, 그들은 아쉬운 듯 머뭇거리다 떠났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이 한국인이라 했지만,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모습이 다소 이상했다. 아! 요즘 중국인들이 한국인인척 많이 한다던데 그런거 아닌가..? 그런 목적이 무엇이였을까..?
나는 혼자 위험한 상상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수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와 우리는 콜린 뒤 샤토(Colline du Château)라는 공원으로 향했다. 니스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해 질 녘 노을이 도시를 물들였다. 이곳은 우리의 유럽 여행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뒤편 거리에는 북적이는 사람들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길을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식사한 뒤, 평온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니스해변
정원에서 바라보는 니스 거리
거리에서 남겨보는 가족 사진

 

 

북적이던 니스 뒷골목
집에서 요리해먹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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