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의 니스 지역에서의 첫날 아침부터 배꼽시계가 울린다.
프랑스를 오기 전, 포르투갈에서 3시쯤 와이너리 이후 간단한 우육면을 먹고 공복인 상태로 유지 중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아 집 앞을 나섰다.
세련된 항구도시 니스 바다 앞으로 바다의 윤슬만큼이나 삐까뻔쩍한 요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는 바다 앞 식당을 선택했다. 포르투갈의 언어부터 초기화하고, ‘봉주흐’를 입속에서 우물거리다 직원이 왔을 때 소심하게 외친다.
카페 겸 식당은 오믈렛이라는 요리가 가득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오믈렛이 있는 줄 몰랐다. 우리는 이것저것 오믈렛을 시켰다.
그 중 단연은 검은 후추로 범벅이었던 오믈렛이었는데, 너무 맛있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알고 보니 3만 원짜리 트러플 오믈렛이었다. 그리고 그날, 살면서 가장 많은 계란을 먹은 듯했다. (우리가 먹은 계란은 한 판도 더 넘었을 것이다.)
운전을 해줄 아버지와 여행 베테랑 큰누나가 한국에서 빌렸던 차를 빌리러 갔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정시에 차에 올라타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일 났다는 누나의 짧고 굵은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 누나, 나는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며 서로를 동시에 바라보며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이전 뉴질랜드여행에서 캠핑카를 빌렸을 때 아버지가 집 앞에 정차되어 있던 차를 박고 밀어붙여 크게 사고를 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원망했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머리를 굴렸다.
사고가 나서 바빴는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고, 저 멀리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요트만큼이나 멋지고 삐까뻔쩍했던 BMW와 함께.
정황은 이랬다.
아버지의 카드가 결제되지 않아 누나 카드로 진행했고, 동시에 주운전자는 누나가 되었다고 했다.
데자뷔란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싶어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이다
베르동 지역은 협곡으로 유명했고, 우리는 그 장관을 체험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껏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뉴질랜드를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어딜 가나 ‘반지의 제왕’에서 고난을 행군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엄청난 산과,
영화 ‘아바타’의 첫 장면을 그려놓은 듯한 초록빛 대자연,
미대에서 보았던 하늘색 물감을 탄 듯한 붓통 안 물색의 호수,
그 속에 우리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경이로웠다.
그 이후 나의 꿈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뉴질랜드를 다시 방문하고, 또 나에게 경이로움을 선물해 주는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럽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베르동 협곡은 깎아지는 절벽길을 차로 타고 끝없이 올라간다.
이후 고지에서 바라보는 협곡의 물색은 뉴질랜드 호수와 닮았다.
동시에 그곳에는 조그마한 식당이 있었다.
Le Mur D’Abeilles(Le Mur D’Abeilles) 음식점에서의 식사를 즐기는 데 발밑으로 협곡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주인의 엄청난 여유와 행복 그리고 친절은 잊을 수 없다. 카르페(?)라는 음식 역시 맛있었다.
근처 Route des Crêtes(04120 La Palud-sur-Verdon)라는 뷰포인트에서 그 장관을 더욱 만끽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찔한 높이가 선사해 주는 건 경이로움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날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맑았던 날씨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고, 또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우박을 경험했다.
튼튼한 차여서 다행이지, 만약 오픈카였다면 뚫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날씨가 다시 개고 무지개가 찾아왔다.
무지개는 어디서나 행운의 상징임을 나타내듯, 사람들은 그 무지개를 찾아 웃음을 지었다.
무지개가 항상 존재했다면 특별하지 않았겠지만, 비 온 뒤 무지개가 찾아와 감회가 색다르듯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Moustiers-Sainte-Marie 외곽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200년 이상의 올리브밭을 끼고 있었고, 주인은 아기자기한 섬세한 소품들로 집을 꾸며놓으셨으며, 나이가 지긋한 할머님이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느껴질 정도로 차분히 우리에게 대화를 많이 걸어주시며, 유머를 곁들여 웃음을 주셨다.
남프랑스에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오신다며, 우리는 아마 유명한 TV 프로그램으로 Sainte-Marie가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웰컴 드링크로 맥주를 선물해 주셨고, 조식을 먹겠냐는 질문에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끝까지 가격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며 “괜찮다”며 우리를 달래셨다.
다만 현찰만 받는다는 이곳에서 현찰이 없는 우리에게 무엇이 괜찮은지는 그때 알지 못했다.
우리는Sainte-Marie를 산책하러 걸어갔다.
그런데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 펼쳐졌다.
산과 산 사이에 걸려 있는 별,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온 베르동 협곡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 식당을 찾았는데, 그곳의 주인 역시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여유가 느껴지는 유머를 곁들였다.
사람이라는 건 참 멋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자신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 사람의 눈을 끝까지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빛을 나눠주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양고기와 정말 맛있었던 와인, 돼지고기를 곁들인 코스 요리를 먹고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가 묵는 숙소, 200년이상 된 올리브밭 앞에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하루를 느끼며 잠에 들었다.